현대 종교학의 확립에서 중요한 기본적 범주, "성(聖)스러움"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종교 현상학이 방대한 역사적 사료들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범주가 필요합니다. 즉, 철학이나 신학과 같이 규범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현상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다루려면 어느 특정 종교에 한정되지 않으며 모든 종교현상이 지닌 특성을 지칭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때 "거룩함" 또는 "성스러움"이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God) 보다는 중립적이고 더 보편화된 개념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용어인 동시에 다른 종교들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인류의 공통적인 종교성을 설명하는 기초 범주로 채택된 것입니다. 종교학계에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을 확립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종교학자들은 나탄 쇠더블롬(Nathan Söderblom, 1866-1931),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9-1937)와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입니다. 쇠더블롬과 오토는 성스러움의 체험이야말로 종교의 독자성을 가장 분명히 해 준다는 사실을 확인한 선구적인 인물들이고, 엘리아데는 이것을 발전시켜 성스러움과 속됨, 혹은 성(聖)과 속(俗)이라는 대조개념을 기초로 종교학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우선 동시대의 쇠더블롬과 오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쇠더블롬은 신학과 조로아스터교를 전공한 스웨덴의 루터교 대주교로서 1901년부터 14년 동안 웁살라(Uppsala) 대학에서 종교학을 강의했습니다. 1913년 「종교와 윤리학 백과사전(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에 <성스러움(Holiness)>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종교 안에서 "성스러움"이 신(神)의 개념보다도 더 본질적인 단어라고 소개했습니다. 신관이 없는 종교는 있을 수 있으나 성스러움과 속됨의 분리가 없는 종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스러움은 신의 원초적 성격을 형성하기 때문에,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이 결여된 신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 없으며, 성스러움은 일상적인 것에서 구별되고 분리되어야 하는 금기(tabu)적인 성격을 지니며, 생명과 풍요함의 원천이 되는 신비로운 힘(mana)을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그는 종교의 유일한 기준은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의 유무(有無)라고 단정했습니다. 그가 종교학의 확립에 기여한 바는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사료를 접근하는 그의 현상학적 태도에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1917년에 출판된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느끼게 된 1차 세계대전의 불안한 시기에 서구학계에 잘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서 종교학과 신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쇠더블롬과 오토는 같은 시기에 논리적 합리성을 초월하는 종교의 성격을 성스러움에서 확인하려 했고 서로의 도움을 환영했습니다. 두 사람 다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을 받았고, 인간성 안에는 원초적으로 종교적 경외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이런 경외감이야말로 종교 안에만 있는 독특한 요소라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오토는 종교의 중심을 이루는 현상은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종교 안에 있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긍정적으로 탐구하고 비합리적인 요소와 합리적 요소와의 관계를 밝히려 했습니다. 합리적인 해설이 신을 다 알려 준다고 믿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고, 신 안에는 비합리적 또는 초합리적 (super-rational)인 성격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이러한 초월적인 면은 개념화 이전의 종교체험 안에서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성스러움이란 종교의 영역에만 있는 고유한 가치와 범주로 정의하고, 성스러움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 도덕적 완전성의 의미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오히려 성스러움이라는 개념에서 도덕적인 선을 뺀 부분이야말로 이름 지을 수 없는 그 무엇, 즉 합리성을 초월하며 독자적인(sui generis, 自流的인) 것으로서, 종교체험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그는 라틴어 "누멘 (numen, 神, 神적인 것, 神性)"을 사용하여 "누멘적인 것(das numinöse, the numinous)"이라고 불렀다. 이 "누멘적인 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는(in-effable) 것이지만 모든 종교 안에 살아 있는 내적인 핵심인 것입니다. "누멘적인 것"은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으나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가르칠 수는 없고 각자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 스스로 깨닫도록 일깨우는 방법이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누멘적 체험의 요소들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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